행복했던, 잃어버린 - Memento mori [좋아요]



2000년의 느낌과 2012년의 느낌은 같으면서도 다르기도 하면서 결국 비슷한 지점이었던 것 같다. 살짝 매친, 좀 무서운 애라고 생각했던 효신을 조금 더 연민하게 되었으며, 허걱하게 했던 그 장면도 우리 공개적으로 확인하자는 시은의 결정적 실언에서 비롯된 행위였던 게 이젠 먼저 들어오는구나.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취향인지 눈인지는 꽤나 곧은 것은, 효신이 양 손에 우유를 들고 뛰어오는 장면이 굉장한 인상으로 남는 것. 설렘의 발랄한 걸음 위로 물씬 느껴지는 한기. 곧 닥칠 상처와 절망을 알고 있기에. 당시의 예진씨 얼굴은 묘한 구석이 있었다. 그땐 효신을 외면하는 시은에게 이해를 했다면, 이젠 외면당하는 효신의 상처에 마음이 쓰이네. 다른 건 다 무시하고 오로지 '너만' 을 구하는 애정이 무섭다기보다 받는 상대에게 부러운 생각도 든다. 좀 살아보니까, 그런 사람 내게 없었습니다. 둘 만의 세계를 쌓은 효신 시은을 부러운(듯한) 시선으로 바라보는 민아의 마음도 알 것 같다. 그런 짝지도 내게 없었습니다.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닌데 그땐 전부였던 것들이 있다. 지금이야 체육시간에 혼자 나가면 그만이었을 텐데, 수련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혼자 앉으면 어떻고, 뭐 이러지만 그땐 뭐 그리 예민하게 굴었던지. 라지만 지금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고. 그랬던 시절의 풍경과 감정이 참 섬세하게도 녹아있다. 교실에 두 대 있던 선풍기도 추억 돋아. 지금 참 후회하는 것 중 하나로는 나도 옥상에서 땡땡이를 쳤어야 했는데! 라는 아쉬움인데 물론 그땐 처맞았겠지만, 처맞았던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고, 하여튼 학교 옥상, 노을지는, 이 키워드는 여괴두를 봤을 때부터의 내 긴 취향에 첫 지점에 서 있는 장면으로, 블로그에서도 이건 여고괴담2 생각나게 해서 좋았어, 라며 몇 번 썼을 거다. 지금껏 정말 수많은 영상물을 봤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아련돋는 장면은 현재까진 없었어. 갑 중의 갑, 서정성의 갑이여. 근데 효신이 양말 냄새를 맡는 건 효신 아니고 예진스러운 느낌이 든다. 닭 잡고 생선 댕강 자르고 콧소리 내는 그 예진아씨. 다시 본 영화는 모든 장면이 눈물나도록 사랑스럽고 아까워서, 천장 효신마저도 소중해서,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.   


데탑에선 좀 짤리던데 내컴에선 잘 나오니 놔둘란다. 나 보라는 플짤.


개그맨 ㄴ책책책

김성중 지음 / 문학과지성사

저 밑의 김미월씨 글에서 이거 좋다고 펄쩍 뛰었던 것처럼, 본인은 현실의, 일상의, 소소한, 안 절망적, 긍정적, 낭만, 희망 뭐 이런 것들이 읽기 편하고 좋아! 라고 하고, 다시 말하면 비현실, 환상, 미래, 거대떡밥, 존나 상징적! 뭐 이런 요소는 취향에서 벗어난다는 얘긴지라 첫 소설 애들이 허공을 붕붕 뜰 때부터 아이고! 를 연발했다는 얘기. 그림자가 바뀌는 얘기에, 평균수명이 140이 된 세계의 얘기, 의자가 씨부렁거리는 얘기, 모두 대머리가 되어 머리 위로 한 떨기 꽃을 피우는 동네 얘기, 토끼 간 빼오는 얘기 등등. 대충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 듯도 하다만 으으 뭐라는겨, 해설이 필요해! 하고 읽어도 이런 건 꼭 해설도 난해하더라; 

당연하게도 좋았던 작품으론 유이하게 환상의 요소가 없던 '개그맨'과 '게발선인장'이었다. '게발선인장' 같은 경우는 맹신 얘기를 무겁지 않고 흥미롭게 푼 작품으로 사이비 맹신 할매한테 전도하러 왔다가 역공당하고 근데 실은 알박기였던 개독 여편네가 좀 웃겼어서 이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고. 목사 하나에 마누라 신도 한 명으로 구성된 교회의 아담함. 할배 도령네도 신도와의 1:1은 마찬가지였구만. 이리 대칭되게 배치를 했었네. 나야 '안 믿어요' 신자이니 그 할배든 예수인지 목사인지의 뾰족이든 쪽수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그 밥의 그 나물, 누구를 향하든 '믿고 싶은 마음'이 '맹신'으로 자라나 통수를 팍! 부질없고 허망한 허상이고. 밀양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~ 생각나는 다 같은 맹신들인디. 털렸는데도 학생에게 보증금 걱정 말라던 할매는 좀 짠했지. 말대로 선한 괴물. 비현실류에선 '그림자'가 괜찮긴 했다. 제 동생 못 보셨나요 저랑 똑같이 생겼는데 제 언니 못 보셨나요 저랑 똑같이 생겼는데 부분이 귀여웠던 지라 송장 발견하는 부분이 안타까웠네. '머리에 꽃을' 의 찌들어가는 인간군상들 보는 맛이 있었고, '개그맨'은 아련하고 쓸쓸한 구석이 괜찮았다. 

이름만 듣곤 남자인 줄 알았더만 커버를 넘겨보니 여자였어. 요새 이런 일이 반복인데, 김진규도 여자였고, 권리도 여자였다. 여 작가를 선호하는 편이라 괜한 망설임의 순간들이었지. 나는 본문을 읽기 전에 작가의 후기를 먼저 읽는데, 첫 책이라 그런지 기쁨의 솔직함이 물씬 느껴졌던 후기라 그게 참 신선하면서도 맘에 들더라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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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가끔 사람들은 뭔가를 강렬히 원하지.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열렬히 뭔가를 기다리는 거야. 난 그런 사람들의 귀에 소리굽쇠를 한번 퉁, 울려준 죄밖에 없어. 공명을 일으키고 동심원 안에서 안정을 누리려 한 건 다 그 사람들 의지야. 종교는 그런 마음만 건드려주면 저절로 생겨나는 거라네." _ p137 '게발선인장'

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이었지만 자신을 넘어서는 괴물이었다. 너무나 완고하게 너그러운 그녀. 어떤 의심으로도 어지러워지지 않고 어떤 악감정으로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빛나는 선함. 무시무시한 선함.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인간의 길로 가지 못하도록 고통을 안겨주는 선함. _ p145 '게발선인장'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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